
비 오는 오후,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 영화를 한 편 꺼내보았습니다.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1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그 시절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불렸죠. 한때는 그저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작품이었지만, 오늘 다시 보니 브리짓의 삶이 마치 지금의 나와 너무도 닮아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기도, 시큰해지기도 했습니다.
브리짓은 30대 독신 여성입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조금 더 날씬해야 하고, 조금 더 세련돼야 하며, 결혼도 했어야 한다고. 브리짓은 그런 시선에 휘둘리기도 하면서도, 또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죠. 새해가 되면 매번 다이어트를 다짐하고, 금연을 선언하고,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매번 실패합니다. 그 모습이 참 익숙하고,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습니다.
그녀는 일기를 씁니다. 못난 나를 꾸짖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우기도 하죠. 브리짓의 일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자신을 붙드는 줄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도 가끔 일기장에, 또는 SNS에 마음을 쏟아붓듯, 그렇게라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영화 속에서 브리짓은 두 남자를 만납니다. 매력적이고 말 잘하는 상사 다니엘 클리버, 그리고 조용하지만 진심을 담은 변호사 마크 다시. 처음엔 다니엘에게 끌립니다. 그가 말하는 ‘자유롭고 쿨한 사랑’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사랑이란 그 반대편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크는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합니다." 그 대사가 얼마나 따뜻하고 위로가 되던지요. 우리는 종종 조건 없는 사랑을 꿈꿉니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그런 사랑을 허락하지 않죠. 조금만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고, 부족한 나를 자꾸만 미뤄두곤 합니다. 하지만 브리짓은 말합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좌충우돌하는 삶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갑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려 애쓰기보다, 진짜 나답게 사는 길을 선택합니다. 다이어트도, 연애도, 커리어도 여전히 엉망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어설픈 삶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심과 용기는 아름답다고.
영화를 보며 나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모자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속도와 나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모습 아닐까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 유쾌한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여성이라면, 그리고 스스로를 자주 몰아세우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한 번쯤 다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분명 지금의 나를 더 깊이 안아주게 될 테니까요.
비 오는 날, 조용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브리짓을 다시 만나보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괜찮아. 난 지금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사랑해주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